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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규표의 구조와 정확도 원리

by yesjenny486 2025. 7. 15.

 

 

규표는 방위 · 절기 · 시각을 측정하던 천문관측기기로 1437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규표는 규(圭)와 표(表)의 아주 간단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규(圭)에는 그림자의 길이를 알 수 있게 눈금을 새겨 놓았으며 표(表)는 그림자가 잘 비치도록 되어있는 기둥입니다.

 

세종시절 규모보다 1/10 축소 복원된 규표

 

 

 

현존하지 않는 세종의 규표 원리

 

표는 1437년(세종19년)에 만들어졌으며 받침석 위에 돌로 만든 21.2척의 규를 설치하고, 8척 높이로 청동 재질의 표를 세웠다. 규에는 주척(1척 = 20.7cm) 단위로 장 · 척 · 촌 · 분을 새겨해 그림자 길이를 측정하도록 하였다. 표의 상단에는 횡량을 설치해 두 마리의 용이 받들도록 하였다. 영부는 규 위에 비친 횡령의 그림자를 더욱 정확하게 측정하기 위한 기구이다.

규표는 일 년의 길이가 정확히 몇 날인가(365일 1/4날)와 24 절기를 알아내기 위해 사용하던 도구였다. 수직으로 세운 막대 표(表)가 정오에 만드는 해의 그림자 길이를 수평으로 눕힌 눈금이 잇는 규(圭)로 재서 가장 긴 때를 동지, 가장 짧은 때를 하지로 정했다. 동지와 하지의 가운데에 해당하는 날을 봄에는 춘분, 가을 에는 추분이라 하고 이 4 절기를 뺀 나머지 20 절기를 그 사이에 약 15일 간격으로 배열한 것이다. 하루 중 그림자의 길이가 가장 짧은 때는 정오이며 규를 설치한 방향은 정확하게 그 지점의 남북방향이다. 우리나라에서 규표가 제작된 기록은 조선 세종 때 경복궁 경회루 북쪽에 간의대를 쌓고 그 서쪽에 동표를 세웠는데, 그 표의 높이가 5배 8척, 즉 40척으로 곽수경의 동표와 같았고, 청석을 깎아서 규를 만들고 규면에 장(丈)·척(尺)·촌(寸)·푼[分]의 눈금을 새겼으며 곽수경이 발명한 경부를 써서 태양의 그림자를 정확히 측정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그 규표(圭表)는 임진왜란 때 병화를 입어 현존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세종시대에 만들어진 규표는 존재하지 않고 지금 우리가 보고있는 규표는 세종 19년(1437)에 만든 것을 1/10로 축소하여 복원한 것이다.

 

 

규표의 구조

 

규(圭)는 돌로 만들며 그 크기는 길이 126척, 너비 4척 5촌, 두께 1척 4촌이며, 받침대는 높이 2척 6촌이다. 규의 남북 양 끝에는 연못이 각각 있는데, 그 지름은 1척 5촌이고 깊이는 2촌이다. 표(表)의 북쪽으로 1척 되는 곳에 있는 들보(梁)의 중심과 수직인 곳에서부터 120척까지 눈금을 매긴다. 눈금의 중심은 너비가 4촌이고, 그 양 쪽에 1촌의 폭으로 척 촌 분을 북쪽 끝까지 그려 넣는다. 척 촌 분 표지의 양쪽에서 1촌 떨어져 있는 곳에 물이 흐르는 도랑을 파는데, 그 깊이와 너비는 각각 1촌이며, 남북 양 쪽의 연못과 통하게 되어 있어서 수평을 잡는다.

표(表)의 길이는 50척, 너비는 2척 4촌, 두께의 너비의 반이다. 표는 규의 남쪽 끝과 받침대를 뚫고 땅 속에 1장 4척 박는다. 이로써 규 위에 36척 높이가 된다. 표의 끝에는 두 마리의 용이 있는데, 그 하반신은 표에 붙어 있고, 상반신은 들보를 받쳐 든다. 들보의 중심에서 표의 끝까지는 4척이고, 밑에 있는 규의 면까지는 모두 40척이 된다. 

들보의 길이는 6척이고 지름은 3촌인데, 윗 면에 물의 도랑을 파서 수평을 맞춘다. 들보의 양 끝과 중 가운데 지름이 2푼(분)되는 구멍이 각각 있는데, 이 구멍을 뚫고 길이 5촌되는 쇠막대를 박는다. 이 쇠막대에 추를 달아 표의 비틀림을 바로 잡는다.

표가 짧으면 규에 새긴 눈금의 간격도 촘촘해진다. 척과 촌 안에는 분과 초도 있다. 따라서, 눈금이 척과 촌 보다 너무 작으면 분별하기 어렵다. 표가 길어지면, 눈금의 간격이 넓어지지만, 그림자가 분명하지 않고 희미해져서 정확하지 않다.

옛사람들은 정확한 그림자를 얻기 위해서, 망통(望筒)을 붙이기도 하고, 혹은 작은 규표를 사용하기도 하고, 혹은 나무로 고리를 삼아 표의 꼭대기의 햇빛이 규의 면에 드리우도록 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구리로 높이 36척 되는 표를 만들고, 그 꼭대기에 용 두 마리로 들보를 받쳐 준다. 들보로부터 규의 면까지는 모두 40척이 된다. 이로써, 8척짜리 표 5개가 된 것이다. 규표에 새긴 눈금은 옛날 1촌은 지금의 5리(釐)에 해당하기 때문에 작은 차이도 식별하기 쉽다.

경부(景符)의 제작법. 너비 2촌, 길이는 그 두 배(4촌)인 엷은 구리판 중앙에 바늘구멍을 뚫는다. 정방형으로 된 받침대의 윗 면의 한 쪽 끝에 붙어 있느기축(機軸)이 이 동판을 받혀 주기 때문에 열고 닫을 수 있다. 그 한 쪽을 기울도록 하면 북쪽이 높고 남쪽은 낮아진다. 경부를 (남북으로) 움직여서 들보의 중심이 분명하게 옥 한 다음, (동판의) 바늘 구멍을 통해서 도달하는 햇빛이 쌀알 만한 크기가 되면 들보가 그 가운데 보인다. 옛날의 방법은 표의 끝의 그림자를 측정하는 것이므로 태 양면의 윗부분이 투영된 것이지만, 지금은 이 들보를 사용하여 그 중심에 해당하는 그림자를 정확하게 얻는다.

 

 

규표가 정확할 수 있었던 이유 

 

규와 표 외에도 ‘영부(景符)’라는 부속품이 달려 있었다. 이것은 해 그림자를 더욱 정확하게 측정하기 위한 장치로, 전통적인 8척 높이의 규표에는 없었다. 40척 높이의 규표는 8척에 비해 측정 오차를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표가 높을수록 해 그림자가 흐릿해져 측정이 힘들어지기도 한다. 이렇게 흐릿해진 해 그림자를 분명하게 잡아 내는 장치가 영부이다. 그 원리는 ‘바늘구멍 사진기’의 원리였다. 해 그림자를 만드는 횡령은 길이 6척, 지름 3척의 원통형 막대기이고, 그 가운데에는 지름 2분(分) 크기의 구멍이 나 있다. 이 구멍 가운데를 가는 선이 가로지르고 있는 구조이다. 영부는 너비 2촌(寸), 길이 2촌 크기의 가는 판때기로 그림자를 받는데, 그 가운데에는 바늘이나 좁쌀 크기만 한 구멍이 뚫려 있다. 그러면 횡령의 구멍을 통과한 햇빛이 다시 영부 판때기의 바늘구멍을 통과해서 규면 위에 비추고, 햇빛을 양분시킨 가는 철사의 상이 규면 위에 맺히게 된다. 실험에 의하면, 영부를 1.5∼2㎜만 틀린 위치에 놓아도 가는 철사가 햇빛을 양분하지 않고 치우칠 정도로 정확하게 해 그림자를 잴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정확도 덕분에 농사 시기를 결정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여 농경 사회에 필수적인 도구였습니다.  24 절기, 태양년  길이, 동지시각 측정 등 천문학 연구에 활용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