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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세종의 동전화폐 조선통보의 실패원인과 땡전한푼없다 의 유래

by yesjenny486 2025. 7. 26.

 

 

 

조선 정부는 왕조 초기부터 중앙집권적 지배체제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화폐제도를 도입, 실시하고자 하였다. 국폐(國幣)는 조선시대 조정에서 발행 및 공인한 화폐이다. 조선왕조는 건국 초부터 국폐를 발행하였는데 태종 대에는 저화(楮貨)를, 세종 대에는 동전을 발행하여 유통시켰다. 그러나 민간에서는 고려 후기 이래 통용돼 오던 마포(麻布)를 거래 수단으로 활용하였다. 조선의 국폐가 동전으로 전환되는 시기는 1678년(숙종 4) 상평통보(常平通寶)가 발행되면서부터이다. 숙종 대의 중앙 정부는 일본에서 수입한 다량의 구리로 상평통보를 발행하여 전국적으로 유통시켰다.

 

세종대왕의 화폐 조선통보

 

 

조선의 처음 동전화폐 조선통보

 

조선 시대 처음 만든 화폐는 종이돈인 저화입니다. 저화는 1401년(태종 1) 처음 만들어졌으며 재료는 닥나무 껍질로, 그 크기가 무척 컸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저화가 처음 만들어져 사용될 때는 저화 1장을 쌀 2말로 바꿀 수 있었으며 나라에서는 일반 백성들이 저화를 사용하게 하려고 관리에게 주는 급여 중 일부를 저화로 지급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종이 화폐보다 곡식이나 옷감(삼베, 모시, 명주 등)으로 물건을 교환하는 것을 좋아했고  점차 저화는 잘 사용되지 않고 가치가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세종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선통보라는 동전을 만들고  조선통보가 널리 사용되기 바라는 마음으로  옷감을 돈으로 사용하는 것을 금지했지만 조선통보도 기대했던 것처럼 널리 사용되지 못했고, 1458년(세조 4)에는 포화(옷감을 돈으로 사용하는 것)를  허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조 때는 전폐라는 화살촉 모양의 화폐도 만들었습니다. 전폐는 철로 만들었는데, 화살촉이 버드나무 잎 모양을 닮아 유엽전(楡葉錢)이라고도 불렸어요. 평상시에 돈으로 사용하다가 전쟁 때에는 무기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든 것인데 아마도 이 시기에 북쪽 국경 지방에 여진족이 자주 났기에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전폐 1개로 저화 3장을 바꿀 수 있게 했어요.

조선 전기에는 저화, 동전, 전폐 등 여러 종류의 화폐가 만들어지지만 널리 사용되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조선은 농업을 기반으로 했기때문에 농업 기본정책으로 상업이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필요한 물품을 스스로 만들어 사용하거나 물물교환했어요. 그러다 보니 화폐를 많이 사용하지 않았고  또 나라에서 만든 돈보다 포화가 더 많이 사용되었지요.

화폐가 본격적으로 사용된 때는 조선 후기에요. 조선 후기에는 벼농사에서 모내기법이 일반화되었고, 그에 따라 농업 생산력이 늘어나면서 상업도 발전했어요. 상업의 발전으로 전국적으로 장시가 열리고 세금도 점차 화폐로 받게 되었지요. 이 무렵 만들어진 화폐가 상평통보예요. 상평통보는 숙종 때 전국적으로 유통되기 시작했습니다.

 

 

세종의 화폐개혁의 실패원인은? 

세종대왕은 열악한 조선의 화폐경제를 타개하기 위해 새로운 화폐정책을 수립하고 동전과 저화를 대대적으로 발행했으나 쉽게 정착되지 않았다. 백성들은 늘 물물교환이나 다른 교환수단을 사용했고, 정부는 강제성을 띠며 탄압하기 시작했다. 물물교환을 하는 백성들은 가산을 몰수당하고 거기에 벌금형을 때리는 가혹한 형벌을 받았으며, 벌금을 때우기 위해 사채를 쓰거나 극단적인 방법으로 자살을 택하기도 했다. 윗사람들은 어떻게든 빠져나갔으나, 당연히 백성들이 재수 없으면 골로 가는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된 데에는 2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는 화폐 사용 경험 부족 및 국내 교역이 미비했기 때문이다. 고려시대에도 해동통보, 동국통보, 동국중보, 해동중보, 삼한통보, 삼한중보 등 동전과 철전을 만들어 널리 유포하려 하였으나 관영 상점이나 일부 주점 및 약방에서 쓰이는 것 말고는 사실상 화폐 유통이 미비했다. 영토가 넓어 막대한 물자를 생산하고, 평야가 많은 데다 대운하를 통해 널리 물자를 유통할 수 있었던 중국과 달리 한반도는 면적이 중국보다 작은 데다 그나마도 산지가 70%를 차지했다. 전근대의 기술력으로는 수레가 자유로이 오갈 수 있는 도로를 산에 놓기는 사실상 어려웠기 때문에 물자를 널리 유통하기가 어려웠다. 저화가 유입되어 유통되기도 했으나 저화는 송나라, 원나라라는 거대 제국의 보증이 있었기 때문에 유통이 가능한 것이었고 조선 조정의 보증만으로는 유통하기 어려웠다. 실제로 17세기 자본주의가 성숙해지기 이전에 지폐가 널리 유통된 사례는 송, 원대 말곤 없다시피 했다. 결국 17세기 이후 농업생산량의 증가와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은 유통 경험이 쌓이고, 대동법의 시행과 점진적인 확대가 되면서 화폐를 널리 유통할 수 있게 되었다. 두 번째는 "화폐 불신"이었다. 관은 화폐 정착을 위해 처음에는 일부 세금을 저화로 받는다고 계획을 세웠으나 막상 저화의 가치가 떨어지자 저화의 명목상 가치에 해당하는 쌀 혹은 베 현물로 받으려 했다. 관은 물가상승의 부담을 받지 않고 돈을 들고 있는 백성들만 물가상승의 피해를 받으니 화폐의 가치는 더욱더 하락할 수밖에 없었다. 태종 대에도 저화를 발행하면서 세액 납부를 일부 저화로 대체 가능하게 하고 녹봉도 저화로 지급하는 등의 노력을 했으나, 이것만으론 신뢰를 얻기는 힘들었다.
이처럼 화폐개혁이 지지부진해지자, 마음이 급해진 세종대왕과 신하들은 점차 강력한 법규를 제정하여 동전의 유통을 강제하려 들었고 때문에 관아와 민중들 간의 충돌이 점차 빈번해지기 시작했다. 전국 곳곳에서 물물교환식으로 물건을 사고팔던 민중들이 적발되어 처벌받는 일이 발생했고 이에 대해 민중들의 반발 역시 격렬해지기 시작했다. 쌀 한 됫박으로 물물교환을 하던 사람이 관리에게 적발되어 곤장 100대를 맞고 수군으로 끌려가다 자결하고 아내는 목을 매는 일이 발생했으며 종로 시전일대가 방화로 쑥대밭이 되는 일까지 발생했다. 마침내, 안이 폭동전야로까지 흉흉해지자 세종대왕은 더 이상의 화폐개혁을 포기하였고, 결국 이전의 물물교환 경제로 회귀하게 되었다.

 

 

땡전 한 푼 없다의 유래 및 엽전 만드는 법 

 

"땡전 한 푼 없다" 옛날 어른들은 돈이 없다는 말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이때 사용된  ‘땡전’은 당백전을 부르는 것이었는데 당백전은 흥선 대원군이 집권한 시기에 만들어졌으며 흥선 대원군은 왕실의 위엄을 세우기 위해 임진왜란 때 불탄 경복궁을 다시 짓기로 하였으나  경복궁을 다시 짓는 데 많은 돈이 필요했습니다. 흥선 대원군은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상평통보의 100배 가치가 되는 돈을 만들었고 이를 당백전이라고 불렀습니다. 당백전은 앞면에 상평통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고 뒷면에 당백(當百)이라 글자가 새겨져 있었는데  이 돈은 실제로는 상평통보의 100배가 아니라 5~6배로 교환되었습니다. 당백전이 사용되면서 시중에 돈이 많이 풀리자 화폐 가치가 떨어지고 물가까지 많이 올라는 요즘 표현으로 인플레이션 현상으로  사람들은 당백전을 땡전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아직까지도 자주 쓰이는 말인데 몇백 년을 거쳐 내려온 단어라니 신기한 기분이 드네요 다시 본론으로 가서   여러 차례에 걸쳐 만들어진 상평통보는 각기 이름은 달라도 조선 시대 일반 백성들은 보통 엽전이라 불렀는데  엽전에서 엽(葉)은 한자로 ‘나뭇잎’이란 뜻이에요. 이런 이름이 붙여진 것은 상평통보를 만드는 틀이 나뭇가지에 잎사귀가 붙어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상평통보를 셀 때도 나뭇잎처럼 한 닢, 두 닢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이렇게 사용된  엽전 주조 과정을 한번 살펴보려 하는데   드라마에서 자주 보던 대장간에서 농기구 만들 때를 연상하면 이해가 더 쉬울 것 같습니다. 첫째. 거푸집에 모래를 채우고 엽전이 달린 가지모양을 찍어낸다. 둘째. 도가니에 구리 나 주석 등 을 넣고 고열에 녹여 쇳물을 만든다 셋째. 거푸집의 구멍에 쇳물을 붓는다  넷째. 굳으면 거푸집을 갈라서 동전모양을 떼어낸다 다섯째. 엽전의 거친 부분을 다듬는다 여섯째. 완성된 엽전을 정리한다.입니다.

혹시  4년에 한 번 올림픽이 개최될 때마다 이를 기념해서 동전을 만든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요? 이외에도 특별한 일이 있을 때 기념주화를 만들지요. 조선 시대에도 국가나 개인이 특별한 일이 생기면 이를 기념하기 위해 동전을 만들었어요. 이를 별전이라 해요. 현재 남아 있는 조선 시대 별전은 약 3백여 종류나 된다고 해요. 그중에는 동전 형태 이외에도 박쥐, 나비 등의 동물 모양과 수복강녕(壽福康寜) 등 글자 모양도 있는데 더 다양한 화폐를 보고 싶다면 화폐박물관을 방문해 보는 것도 좋을 거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