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은 백성을 주인으로 여기는 민본주의와 그 백성을 아끼는 마음의 애민정치를 하였으며, 과학, 의학, 음악등 다양한 분야의 학문을 중요시하였고 훈민정음 창제, 측우기, 농사직설을 통해 백성들의 편안한 삶과 농업기술 발달에 큰 기여를 하였다. 또한 신하들과 소통하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진정한 리더의 모습을 보였으며 나라의 모든 분야를 균형 있게 중요시하며 돌보았다고 한다. 이러한 가치관 덕분에 조선시대 최고의 성군으로 후대까지 칭송받고 있는 이유이지 않을까 한다.
훈민정음창제
가르칠 (훈) 백성(민 ) 바를(정) 소리(음 ) : 훈민정음//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이 담겨져 있다.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인데 여기서 중요한것은 훈인이 아니라 훈민이라는 점이다. 한자에서 (인) 이란 읽고 쓸 수 있는 가독층을 말하지만 (민) 이란 읽고 쓸 수 없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니 그런 사람들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얘기인데 세종은 바른말을 해야지 바른 생각을 할 수가 있고 그래서 국격이 높아지며 백성들의 수준이 높아지는 나라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 뜻이 훈민정음이라는 네 글자에 담겨있다.
"우리나라 말은 중국 말과 달라 한자와는 서로 통하지 아니한다. 이런 까닭에 한자를 모르는 백성들이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기록으로 남기지 못한다. 내가 이것을 딱하게 여겨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니 백성들은 이 글자를 배워 누구나 문자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전해라." 백성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왕이었고 그로 인해 엄청난 조선의 번영을 가져다주었으니 후대에도 존경받는 것이 당연하리라 생각이 든다
과학기술로 농업을 발전시키다
당시 조선은 농업중심의 사회였다. 해가 뜨고 지는 시간, 일 년 중 비가 내리는 시기와 비의 양 등 농업에 꼭 필요한 것들이지만 그것을 예측할 수가 없었기에 하늘에 대한 연구를 하기 시작했고 천문학 분야 쪽으로는 간의, 혼천의, 손상등 별을 관측할 수 있는 기구를 만들어 정인지, 이천, 장영실등과 함께 천제의 움직임을 관측하고 연구했다. 해의 그림자를 이용해 백성들이 시간을 알 수 있도록 앙부일구(해시계) 를 만들었으며 흐린날 해가 없어 시간을 알수 없는 단점을 고려해 물의 흐름을 이용해 시간을 측정할 수 있는 자격루를 제작하고 자동 시보 장치를 추가하여 정확한 시간 측정을 가능하게 하였다. 1442년 자주적인 역법인 칠정산을 완성하여 천체의 운행과 시간을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많은 과학기구를 개발했다. 농업분야로는 조선최초 농업 백과사전인 농사직설을 편찬하여 우리나라에 맞는 농업기술을 체계화하고 보급하였으며 강우량을 측정하는 측우기를 세계 최초로 발명하여 농업 생산량 예측과 수자원 관리에 큰 도움을 주었으며 강물의 수위를 측정하는 수표를 설치하여 홍수와 가뭄을 예측하고 대비하는데 활용했다. 이러한 세종의 노력으로 고려말에 비해 농지는 2.4배 , 수확량은 4배가 늘어나게 되었다. 이 시기의 농업은 공급량의 절대적인 부족으로 생산량 증대가 가장 중요했고 그러기에 세종은 농업에 필요한 과학기술개발에 진심이었으며 그 결과 획기적으로 농업 생산량을 높여 백성을 편안케 하였다.
그 밖의 업적들
세종에서 세(世) 자는 '영토를 넓히는 등, 군사적 업적이 뛰어났던 임금에게 주는 묘호라고 한다. 이것은 4군 6진 을 개척한 업적을 반영하여 올린 것이다. 4군 6진으로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영토를 확장한 것뿐만 아니라 왜구로부터 백성을 지키기 위해 이종무 장군을 앞세워 대마도 정벌에 나섰다. 젊은 학자들이 학문에 연구할 수 있도록 집현전을 지었으며 유교와 관련된 다양한 책은 물론 지도를 제작하고 금속활자를 만드는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또한 세종은 음악에도 관심이 많았는데 조선시대 궁중음악은 향악, 당악, 아악으로 구분되었다. 향악은 우리나라 전통음악, 당악은 통일 신라부터 고려시대까지 들어온 당나라음악. 아악은 고려 때 송나라에서 전해진 궁중음악입니다. 잔치 때는 주로 향악과 당악이 제사 때는 아악이 연주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중국음악이 제사때 사용된 것이 되니 세종은 아악을 정비하여 조선식 아악을 창제하게 하고 우리의 음악인 향악과 조화롭게 연주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라 명하였으며 명을 받은 박연은 아악을 정리하고 편종과 편경등 아악기를 만들어 조선의 소리를 낼 수 있게 만들었다. 또한 복지에도 힘을 쏟았는데 관청에서 일하는 관비들이 출산을 할 때 출산예정달을 포함해 출산 후 100일을 쉴 수 있게 함과 출산 1달 전부터 복무에서 면제시켜 주었고 산모를 돌 볼 수 있게 관비의 남편에게도 산후 1개월간 휴가를 주었다. 또 세종은 80세 이상의 노인들을 궁궐로 초청하는 연회인 양로연도 자주 베풀었다. 그리고 100세가 넘은 노인에게는 나라에서 쌀과 옷을 내려 주었다. 어린이와 노인이 죄를 범했을 때 얼굴이나 팔에 죄명을 표시하는 문신 '자자'형(얼굴이나 몸에 죄목을 새기는 형벌)을 금지했다. 세종은 "어린아이는 뒤에 허물을 고칠 수 있고, 늙은이는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자이므로 자자는 옳지 않다."라고 의견을 말했다고 전해진다 이밖에도 많은 업적이 있지만 앞으로 포스팅에서 하나씩 천천히 알아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