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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보물 제 845호 우리나라 최초의 공중시계 앙부일구의 원리

by yesjenny486 2025. 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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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나라에는 공공에게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 누구나 볼 수 있는 시계가 있는데 이를 공중시계라 부른다. 영국의 큰 시계탑 빅벤이 그 예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최초 시계는 무엇일까?? 바로 조선시대 세종 때 등장한 해시계 앙부일구이다.

 

앙부일구

 

우리나라 최초의 공중시계 

우러를 앙 // 가마 부 // 날 일 // 그림자 구  : 앙부일구 (가마솥을 닮은 하늘을 우러러보는 해시계) 

해의 움직임에 따라 시간을 측정하였고 양부일영이라고도 불리었다. 1434년(세종 16)에 제작되었는데 앙부일구의 제작자는 불분명하지만 세조실록에 의하면  “세종이  이순지 에게 명해 의상(儀象)을 교정(校正)하게 하니, 곧 지금의 간의 · 규포  ·  대평(大平 또는 天平) · 현주(懸珠) · 앙부일구(仰釜日晷)와 보루각 · 흠경각 은 모두 이순지가 세종의 명을 받아 이룬 것이다”라고 적혀있는 것으로 보아  이순지가 앙부일구를 비롯한 각종 의상 제작에 책임자로 참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앙부일구는 1434년(세종 16)에 종로 혜정교(현 광화문 우체국 북쪽에 있던 다리 ) 앞과 종묘 앞의 거리에 설치되어 공공시계의 역할을 한 우리나라 최초의 공중시계다. [증보문헌 비고]에는 "앙부일구는  구리를 부어서 그릇을 만들었는데 모양이 솥과 같다. 안에 둥근 송곳을 설치하여야 북에서 남으로 마주 대하게 했으며, 움푹 파인 곳에서 휘어서 돌게 했고 선을 새겨 태양이 움직이는 궤적을 그렸다. 12 지신을 그린 것은 글을 모르는 백성을 위한 것으로 길가에 놓아두니 구경꾼이 모여든다. 이로부터 백성도 이것을 만들 줄 알게 되었다"라고 나와있다 즉 백성들은 글을 몰라도 시계를 읽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12 지신이 그려서 있는 세종 때 제작된 앙부일구는 한 점도 없으며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12 간지가 그려져 있는 것들은 모두 조선후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앙부일구의 원리

앙부일구는 해가 동쪽에서 떠 서쪽으로 지면서 생기는 해 그림자의 변화 원리를 이용해 제작한 것으로그림자가 시각선에 비치어 시간을 알 수 있도록 고안되어 있습니다또 앙부일구는 가로글씨를 읽으면 시각이세로글씨를 읽으면 계절을 동시에 알 수 있어 시간을 재는 시계인 동시에 일 년의 날짜와 24 절기를 알아보는 달력의 역할을 하는 기구였습니다. 해 그림자가 맺히는 오목한 시반과 그림자를 맺혀주는 영침, 이들을 지지하는 4개의 다리, 그리고 다리를 받치는  동시에 물을 채워 시반을 수평으로 바로잡을 수 있는 십자모양의 물받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시반 면에는 시각선과 절기선이 새겨져 있고 시반 주위는 빙 돌려서 24 절기와 24방위를 새긴 지평환이 있으며  영침과 나란하여 시각선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묘, 진, 사, 오, 미, 신, 유의 7개의 시가 적혀있다. 영침과 직각으로 절기선을 13개 새기고 24 절기를 새겨 넣었는데 오른쪽 맨 위부터 그림자가 가장 긴 동지부터 가장 짧은  하지까지 새겨 표시하였고 왼쪽 밑에서부터는 나머지 하지에서 동지까지 계절을 차례대로 표시하였다. 태양은 계절, 지방에 따라 남중고도가 달라진다. 태양의 남중고도는 90도 -위도가 되며 지구 자전축이 23.5도 기울어져 있어 이 값에 춘. 추분은 0도 동지는 -23.5도 하지 때는 +23.5를 더하면 그 계절의 남중고도가 된다. 즉 서울(위도 37.5도)을 기준으로 태양의 남중고도는 춘추분에는 52.5도 하지 76도 동지 29도이다. 겨울에는 집 안 깊숙이 햇빛이 들어오고 여름에는 태양이 머리 꼭대기에 있어 그림자가 길지 않은 이유인 것이다.

 

 

 

대한민국 보물 제845호 

앙부일구는 조선 세종 때부터 20세기까지 지속적으로 제작되었다. 공공시계로 출발했지만, 점차 다양한 계층이 소유할 수 있는 형태로 보급되었다. 어떤 이들은 집 정원에 설치해 놓고 시간을 측정하기도 했고 어떤 사람들은 휴대용으로 만들어 가지고 다니기도 했는데 이 휴대용은 매우 작은 크기로 지금 스마트폰의 1/4 사이즈라고 한다. 앙부일구의 소재도 청동, 돌, 자기, 상아 등 다양해졌는데, 국내에 전해지는 유물은 그리 많지 않다.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세로 5.6㎝, 가로 3.4㎝, 높이 2.0㎝ 크기의 대한민국 보물 제845호 앙부일구가 소장되어 있다. 회백색 대리석으로 만들었고, 청동으로 만든 영침을 부착하였다. 또 나침반도 설치하였는데, 나침반 주위에 24 향(向)이 표시되어 있다. 뒷면에는 ‘동치(同治) 신미(辛未) … 강건(姜湕) 제(製)’라고 쓰여 있어 1871년(고종 8)에 강건이 제작했음을 알 수 있다. 또 서울역사박물관에는 약간 큰 휴대용 앙부일구가 소장되어 있는데, 가로 3.1㎝, 세로 7.2㎝, 두께 3.8㎝의 크기이다.

 어느 특정한 사람만이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글을 모르는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광화문과 종묘에 설치함으로써 공중시계 역할을 수행하게 한 것입니다. 이를 통해 비록 2시간 단위지만 사람들이 시간을 정확하게 알고 자신의 일상을 보다 정교하게 관리할 수 있게 하고, 또 백성들이 실물을 직접 보고서 만들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실제로 앙부일구는 조선시대 후대까지 지속적으로 제작 사용되고, 특히 휴대용 해시계까지 만들어질 정도로 일상에서 많이 사용됐습니다. 과학기술의 혜택이 어느 특정 계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각지대에 있는 모든 백성들  전체에게 돌아가도록 한 것입니다. 앙부일구의 솥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앙부일구의 마음은 백성을 바라보고 있었던 거 같습니다. 그 마음은 아마도 세종의 마음이었겠지요. 최초의 공중시계였던 앙부일구를 생각하며, 오늘 우리는 국민을 위한 기초 과학기술의 발전과 사용에 적절한 투자를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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