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창제 당시에는 28글자였으나 지금은 24글자만 사용되고 있다. 1933년 "한국 맞춤법 통일안"에 의해 사라진 아래아(ㆍ), 반치음(ㅿ), 옛이응(ㆁ), 여린히읗(ㆆ)에 대해 알아본다. 표기에서는 사라졌지만 지금도 우리는 발음하고 있고 사용하고 있는 4글자가 사라지지 않았다면 글로벌 시대에 외국어를 더 정확하게 한글로 표현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많은 관계자들이 말한다. 세종대왕은 이렇게 완벽한 글자를 만들었던 것이다.
제일먼저 사라진 아 래아(ㆍ)
ㆍ 음은 ㅏ와 ㅗ의 중간발음이다. 공식적으로는 네 글자 중 가장 먼저 사라진 글자이다.
아래아는 1717세기말까지 쓰였기 때문에 사라진 옛글자 중 가장 오래 사용되었다. 또한 사라진 글자 중 유일한 모음으로 사라진 글자 가운데 모음조화 등 우리말 규칙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쳤다. 아래아는 한글 조음 원리에서 천지인 중 하늘을 상징하는 양성모음이었다. 양성모음과 음성모음의 수가 동일했기 때문에 양성모음은 양성모음끼리, 음성모음은 음성모음끼리 사용한다는 모음조화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래아 글자가 사라지면서 모음조화가 파괴되기 시작했고 규칙적으로 변화하던 단어가 점차 불규칙적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이런 불규칙 변화가 문법이 어려워지는 이유가 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12년 조선총독부에서 ‘보통학교용 언문철자법’을 발표하면서 아래아는 공식적으로 폐기되었다.
[세종왕조실록]에는 훈민정음을 " 어디 가더라도 통하지 않는 곳이 없고 바람소리, 학의 울음소리, 닭 울음소리와 개 짖는 소리까지 모두 표현해 쓸 수 있다"라고 표현되어 있다. 요즘 같은 글로벌 시대에 사라진 4글자를 사용했다면 영어 표기가 더 쉬웠을 것이란 학계의견이 있는걸 보아 다시 복원하는 노력을 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옛 이응(ㆁ), 여린히읗(ㆆ)
옛 이응 : ㆁ 현대 한국어 화자 입장에서 발음을 유추하기 어려운 반시옷, 여린히읗 과는 달리, 이 글자의 발음은 현대 한국어에 버젓이 살아 있다. ㅇ은 초성에서는 소리가 없고 받침에서는 [ŋ] 소리가 나는데, 그 소리가 바로 이 옛 이응의 소리다.
은 훈민정음해례본에서도 이응과 비슷하다고 설명하는데 "오직 아음 ‘ㆁ’은 비록 혀뿌리가 목구멍을 닫고 소리 기운이 코로나오나 그 소리는 ‘ㅇ’ 소리와 비슷하므로, 운서에서는 의모(疑母, ㆁ)와 유모(喻母, ㅇ)가 서로 많이 섞이어 쓰인다. 이제 또한 목구멍에서 소리를 취하되 어금닛소리의 글자 만드는 시초로 삼지 않는다." 1라고 되어있다. 6세기부터 이응과 혼용하다가 17세기 문헌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옛 이응은 초성과 종성에서 모두 [ŋ] 소리가 나는데, 초성 위치의 [ŋ] 소리가 탈락되어 쓸 일이 없어졌다. 그래서 옛 이응이 아닌 그냥 ㅇ이 받침으로 가면 [ŋ] 소리를 내고, 초성에선 소리가 없는 식으로 1인 2역을 하고 옛 이응은 퇴장하게 됐다. 받침이 없을 때 종성에 쓰던 ㅇ(그러니까 묵음)은 쓰지 않는 식으로 되었다
여린히읗 : ㆆ 훈민정음의 자모 중 하나로 지금은 쓰이지 않는다. 비공식적 명칭은 '여린히읗' 또는 '된이응'이다. 순우리말의 초성에는 쓰인 적이 없어 음가를 가지지 않는 것으로 여긴다. 문헌에서는 네 글자 중 가장 빠른 15세기 초부터 문헌에서 나타나지 않았다. ㆆ는 동국정운식 한자음을 표기하기 위해 중국어의 36개 자음에 맞춰 구상된 글자로, ㅎ 을 거센소리로 보았을 때 ㅎ의 예사소리에 해당하는 위치에 있었다. 주로 중국어 발음을 표기하기 위해서 쓰였고 세조 이후부터는 쓰이지 않았다. 이후에 소실된 낱자인 ㅿ이나과는 달리 광범위하게 쓰인 글자는 아니다. 고유어에서는 관형사형 전성어미 '-(ᄋᆞ/으)ㄹ'에 붙어, 뒤 글자의 초성을 된소리로 만드는 부호(니르고자호ᇙ배이 셔도 = 니르고져홀빼이셔도). 즉 ㄱ, ㄷ, ㅂ, ㅈ이 ㅎ과 만나 ㅋ, ㅌ, ㅍ, ㅊ으로 격음화 되는 것처럼, ㄱ, ㄷ, ㅂ, ㅅ, ㅈ이 ㆆ을 만나면 ㄲ, ㄸ, ㅃ, ㅆ, ㅉ으로 경음화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편 뒤의 글자가 된소리로 날 수 없는 경우에는 끊어 읽으라는 절음 부호(몯ᄒᆞᇙ노미 하니라)로 쓰였다. 또는 동국정운식 한자음 표기에 사용되기도 했다.
반치음(ㅿ)
반시옷, 가벼운 시옷, 여린 시옷, 반치음 등으로 불리는 한글자모의 하나. 현대의 한글에서는 쓰이지 않는 옛 한글이다.이다.
반시옷으로 쓰였던 우리말은 가을(ᄀᆞᅀᆞᆶ), 겨울(겨ᅀᅳᆶ), 마음(ᄆᆞᅀᆞᆷ), 마을(ᄆᆞᅀᆞᆶ), 윷(ᅀᅲᆺ)등이 있다. 그 밖에 단독형에서는 /ㅅ/이었지만 모음과 모음 사이(어중)에 오면서 유성음화되어 ᅀ로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오늘날 남아있는 "두어 개"라는 표현이 그 예로, '두서>두ᅀᅥ> 두어'의 과정을 겪은 것이다. 훈민정음 에는 '반치음'(反齒音)으로 지칭되었는데, 이는 '아음'(牙音, 오늘날로는 연구개음 ), '설음'(舌音, 오늘날로는 치경음 비음과 파열음)과 같이 음의 속성을 나타낸 말이라 글자의 이름은 아니다. 이는 당에서 송 시기 때 정립된 중국 음운학에서 자음을 아/설/순/치/후/반설/반치로 나눈 것을 따른 것이다(중고음의부분 참조). 애초에 훈민정음에서는 글자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국어학에서는 주로 음소 로서의 /ㅿ/에 대해 다루기 때문에 '반치음'이라고 자주 부르는 편이다. 아울러 훈민정음에서는 반설음(反舌音) ㄹ 과 함께 ㅿ을 이체자(異體字)로 분류하였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반치음과 시옷을 합친 '반시옷'을 단순히 ㅿ을 이르는 말, '반치음'은 '훈민정음 '에서 ‘ㅿ’을 이르는 말로 정의하였다.
탈락 시기에 대해서는 두시언해의 간행 시기를 전후하여 소실되기 시작하여 16세기 후반에는 거의 자취를 감춘 것으로 보아, 임진왜란 이후에 완전히 없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용비어천가 (1445년), 월인천강지곡 (1447년), 석보상절 (1447년), 훈민정음 언해본(1459년), 초간 두시언해(1481년)에는 ㅿ이 관찰되나 선조판 소학언해(1586년)와 두시언해(1632년)’에는 이전에 ㅿ과 같이 쓰였던 단어들이 모두 ‘ㅇ’으로 바뀌어 있기 때문에 1481년~1586년 사이에 소멸되었다고 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