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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훈민정음 창제 취지와 역사 그리고 훈민정음이 한글이 된 이야기

by yesjenny486 2025. 7. 5.

한글이 없었다면?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지 않았다면 아마 우리는 아직도 어렵고 복잡한 한자를  빌어 쓰며 살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훈민정음의 주요 내용을 보면  1 제자해 (制字解): 자음과 모음의 제자 원리를 설명  2  초성해 (初聲解), 중성해 (中聲解), 종성해 (終聲解): 각각 초성(자음), 중성(모음), 종성(받침)의 음가와 사용법을 설명 3.  합자해 (合字解): 초성, 중성, 종성이 결합하여 음절을 이루는 원리를 설명  4. 용자례 (用字例): 단어 표기 예를 제시하고 있다. 앞으로 차근차근 상세하게 알아보겠다.

 

 

훈민정음이 한글이 된 이야기 

 

훈민정음은 세종대왕이 창제한 문자의 명칭이자 창제원리와 사용법등을 해설해 놓은 책의 제목이기도 하며  한글의 옛 이름(첫 이름 )이다. 세종 25년 (1443년) 창제된 이후 1446년 (세종 28년)에 반포된 훈민정음은 28개의 낱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소리글자에 속한다. 배우기 쉽고 읽기 쉽다는 편리한 장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반포 초기에는 "정음"으로도 불리었고 언문, 언서, 반절, 암클, 아햇글 등으로 불리면서 양반들에게 홀대받았다. 그러나 한자에 비해 배우기 쉽고 읽고 쓰기가 쉬웠기 때문에 널리 보급되었고 한글이라는 명칭은 1910년대 초 주시경에게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에 대한 명확한 기록은 없으나, 1913년 간행된 『아이들 보이』라는 잡지의 끝에 제목으로 '한글'이라 한 것이 있다. 이 명칭은 조선어학회가 훈민정음 반포 8 회갑이 되는 해인 1926년 음력 9월 29일을 반포기념일로 정하여 '가갸날'로 부른 뒤, 1928년에는 가갸날을 한글날로 고쳐 부르게 되면서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졌으며 오늘날 한국어를 표기하는 공식 문자가 되었다. 한글의 뜻은  한(韓) 나라의 글'  즉  '큰글', '세상에서 첫째가는 글' '으뜸가는 글' '하나밖에 없는 글' 등으로 해석될 수 있다.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을 창제한 후에 궁중에 성삼문, 신숙주, 최항, 정인지, 박팽년 등 집현전 학자들에게 명하여 해설서인 " 훈민정음 해례본'을 발간하도록 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해례본은 기록에만 존재할뿐 한 권도 전해지지 않았는데 1940년 경상도 안동에서 약 500년 만에 처음으로 발견되었으며 현재에는 서울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1962년 국보 70호로 지정되었으며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훈민정음의 역사 

 

1443년(세종25년) 12월에 훈민정음 28자가 창제되었다. 세종은 성삼문, 신숙주, 최항, 정인지, 박팽년 등 집현전 학자들에게 훈민정음 해설서인 " 훈민정음 해례본" 발간과 "동국정운"을 편찬하도록 했으며 최항과 박팽년에게 고금운회 거 요의 번역을 명했다. 고금운회 거요는 한자의 운(韻)을 분류하여 규칙에 맞추어 열거한 서적을 말한다. 1445년(세종27) 4월에는 훈민정음을 사용하여 악장인 "용비어천가"의 편찬사업을 진행하였다.

1444년 2월 최만리, 신석조, 김문, 하위지, 정찬손, 송처검, 조근 등 집현전 내 훈민정음 반포에 반대하는 학자들은 6가지 이유를 들어 반대상소를 올렸다. 이때 상소를 올린 자들의 대표 격이었던 부제학 최만리가 세종의 노여움을 사 책망받고 투옥되었다가 하루 만에 석방되었으나 사직하고 낙향했다.

1446년 음력9월에 시련을 딛고 드디어 훈민정음이 반포된다. 이때 "훈민정음 해례본"이 함께 간행되었는데 이 책에는 훈민정음의 창제목적과 원리, 사용법등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세종은 하급 관리를 뽑을 때 훈민정음을 시험 과목에 추가하도록 하였고 "삼강실행"과 같은 국가 윤리를 훈민정음으로 풀어 백성들에게 가르치도록 하였는데 이 두 기지 사항을 조선 최고의 법전인 경국대전에 명문화하였다. 사서(四書)를 훈민정음으로 번역하게 하였고 백성들이 관가에 제출하는 서류를 훈민정음으로 작성토록 하였으며 형률 적용과정에서 그 내용을 훈민정음으로 번역하여 알려주도록 했다. 궁중의 여인들에게 훈민정음을 익히도록 하고 세종 자신은 조정의 대신과 기관에 훈민정음으로 글을 내리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에 민간과 조정의 일부 문서에서 훈민정음을 자연스레 사용하게 되었고 보금 정책에  따라 훈민정음은 점차 퍼져 나가게 되었다.

 

 

한글의 창제 취지

 

한편 한글의 창제 취지에 대해서는 서문에서

 

有天地自然之聲,則必有天地自然之文。所以古人因聲制字,以通萬物之情,以載三才之道,而後世不能易也。然四方風𡈽區別,聲氣亦隨而異焉。蓋外國之語,有其聲而無其字。假中國文字以通其用,是猶枘鑿之鉏鋙也,豈能達而無礙乎。要皆各隨所處而安,不可强之使同也。

천지(天地) 자연의 소리가 있으면 반드시 천지자연의 글이 있게 되니, 옛날 사람이 소리로 인하여 글자를 만들어 만물(萬物)의 정(情)을 통하여서, 삼재(三才)의 도리를 기재하여 뒷 세상에서 변경할 수 없게 한 까닭이다. 그러나, 사방의 풍토(風土)가 구별되며 성기(聲氣)도 또한 따라 다르게 된다. 대개 외국(外國)의 말은 그 소리는 있어도 그 글자는 없으므로, 중국의 글자를 빌려서 그 일용(日用)에 통하게 하니, 이것이 둥근 장부가 네모진 구멍에 들어가 서로 어긋남과 같은데, 어찌 능히 통하여 막힘이 없겠는가. 요는 모두 각기 처지(處地)에 따라 편안하게 해야만 되고, 억지로 같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라고 위와 같이 언급함으로 써 세상의 다양하고 동등한 환경을 깊이 이해하고 헤아려 한국의 발음의 고유성을 밝히고 이에 적합한 문자의 필요성에서 과학적인 원리를 사용하는 그 절차를 설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