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숙주는 조선 초기의 빼어난 문인, 학자, 정치가였다. 세종 때부터 성종 때까지 활약한 그의 생애를 훑어보면, 학술, 문화와 정치, 외교의 중심에 위치했던 그의 존재를 확인하게 된다. 조선이 경국대전 체제를 통해유교국가를 완성시키고, 정제된 양반 문화를 꽃피우는 데 그는 매우 중요한 구실을 했는데 오늘은 신숙주의 업적 외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일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다. 집현전 학자 신숙주의 출생 신숙주는 태종 17년(1417) 6월 20일에 전라도 나주목 금안리 오룡동(현 전라남도 나주시 노안면 금안리 반송마을)에서 아버지 신장과 어머니 나주 정씨 지성주사(知成州事) 정유(鄭有)의 딸 사이의 5남 2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태종의 과거 동기이자 공조참의를 지낸 신포시, 할머니..
조선 전기의 학자이자 관리로, 집현전 학사로서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했으며, 사육신 중 한 명이기도 합니다. 그는 세종대왕의 총애를 받으며 집현전에서 활동했고, 단종 복위 운동에 가담하여 처형되었습니다. 오늘은 이개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집현전 학자 이개의 출생 1417년(태종 17)에 태어나 1456년(세조 2)에 사망했다. 본관은 한산. 자는 청보· 백고, 호는 백옥헌(白玉軒) 이며 이개는 제6대 왕 단종을 위해 사절한 사육신의 한 사람이자, 이색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중추원사 이종선이다. 아버지는 이계주이며, 어머니는 진명례의 딸이다. 토정비결의 저자 토정 이지함 은 그의 종증손이고, 조선 중기의 동인, 북인의 당수 아계 이산해 는 그의 종현손이 된다. 집안 내력으로 이개는..
성미가 과묵하고 공손했으며, 항상 집현전에서 경연에 왕을 모시면서 학문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는 품성이 강직해 대사간의 직분으로 권세에 굴하지 않고 직언을 서슴지 않았다고 전해지는데 문종 초기 왕이 병약하고 힘이 없자 권력을 농단하는 대신들의 월권행위와 실정, 부패행위 등을 적극적으로 공격, 비토 하다가 대신들과 문종으로부터 반격을 받았으나 승지 정이한과 정창손 등의 비호로 무사하기도 하였다. 오늘은 이런 하위지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집현전 학자 하위지의 출생 1412년 경상도 선산군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에서 태어났다 출생 연도는 정확하지 않으나 추정으로 전해지고 있다. 아버지는 군수를 지낸 하담(河澹)이고, 어머니는 유면(兪勉)의 딸이다. 증조부는 하윤(河胤), 할아버지는 문하..
박팽년은 조선 세종 시대에 활동했던 집현전 학사로,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하고 다양한 학문 연구에 기여했습니다. 그는 뛰어난 학문적 능력으로 세종의 총애를 받았으며, 집현전 학사로서 훈민정음 창제뿐만 아니라 고려사절요 및 고려사 편찬에도 참여했습니다. 하지만 세조의 왕위 찬탈 후 단종 복위를 꾀하다가 처형당하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는데 오늘은 박팽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박팽년의 탄생 박팽년은 1417년 충청도 회덕현 흥농천 왕대벌 (지금의 대전광역시 동구 가양동 )에서 태어났으며 본관은 순천이고 박팽년의 증조부는 공조전서를 지낸 박원상(朴元象)이고 할아버지는 박안생(朴安生)이다. 아버지는 이조판서를 지낸 박중림이며 어머니는 안동 김 씨 김익생의 딸이다. 남동생으로는 박찬영, 박기년, 박대년, ..
성삼문(成三問)은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학자로, 집현전에서 활동하며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했습니다. 그는 사육신 중 한 명으로, 단종 복위 운동을 주도하다가 처형되었는데 오늘은 그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성삼문 출생 1418년 충청도 홍주 ( 지금 충청남도 홍성군 )에서 태어났다. 성삼문은 본관이 창녕으로 개성유후 성석용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판중추부사 성달생이고 아버지는 도총관을 지낸 성승이며 어머니는 현감 박첨의 딸이다. 성삼문의 이름이 특이한데 낳을 때 공중에서/낳았느냐?/ 라는 소리가 3번 들렸다고 한다. 3번째 질문에서야 비로소 아이를 출산했기 때문에 이름이 삼문(세 번 물어봄)이 되었다는 기이한 설화가 전해진다. 장남이어서 동생들도 다 '삼'자 돌림이 되었고 성삼빙, 성삼고, 성삼성..
압권과 대책이라는 말이 과거시험에서 유래되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시험이 끝나면 1등을 차지한 장원의 답안지를 임금이 가장 먼저,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다른 답안지들 위에 올려두었는데 이처럼 장원의 답안지가 다른 답안지를 눌러 덮는 모습에서 ‘압권(壓卷)’이라는 표현을 썼고 과거시험에서 사회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도록 출제된 문제를 ‘책문(策問)’이라 하였는데 이에 대해 응시자가 작성한 답변, 즉 해결 방안을 ‘대책(對策)’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1447년 세종 29년 세종이 직접 출제한 문제와 답 왕은 말하노라.인재는 천하국가의 지극한 보배다. 세상에 인재를 드어서 쓰고 싶지 않은 임금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국왕이 인재를 쓰지 못하는 경우가 세 가지 있으니 첫째는 인재를 알아보지 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