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전체 글49 [조선] 집현전 학자 성삼문 출생 관직생활 그리고 찬문에서 1등한 성삼문의 답 성삼문(成三問)은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학자로, 집현전에서 활동하며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했습니다. 그는 사육신 중 한 명으로, 단종 복위 운동을 주도하다가 처형되었는데 오늘은 그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성삼문 출생 1418년 충청도 홍주 ( 지금 충청남도 홍성군 )에서 태어났다. 성삼문은 본관이 창녕으로 개성유후 성석용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판중추부사 성달생이고 아버지는 도총관을 지낸 성승이며 어머니는 현감 박첨의 딸이다. 성삼문의 이름이 특이한데 낳을 때 공중에서/낳았느냐?/ 라는 소리가 3번 들렸다고 한다. 3번째 질문에서야 비로소 아이를 출산했기 때문에 이름이 삼문(세 번 물어봄)이 되었다는 기이한 설화가 전해진다. 장남이어서 동생들도 다 '삼'자 돌림이 되었고 성삼빙, 성삼고, 성삼성.. 2025. 7. 31. [조선] 세종과 광해군의 과거시험 문제와 답 우리에게 유명한 섣달그믐밤의 서글픔 압권과 대책이라는 말이 과거시험에서 유래되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시험이 끝나면 1등을 차지한 장원의 답안지를 임금이 가장 먼저,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다른 답안지들 위에 올려두었는데 이처럼 장원의 답안지가 다른 답안지를 눌러 덮는 모습에서 ‘압권(壓卷)’이라는 표현을 썼고 과거시험에서 사회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도록 출제된 문제를 ‘책문(策問)’이라 하였는데 이에 대해 응시자가 작성한 답변, 즉 해결 방안을 ‘대책(對策)’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1447년 세종 29년 세종이 직접 출제한 문제와 답 왕은 말하노라.인재는 천하국가의 지극한 보배다. 세상에 인재를 드어서 쓰고 싶지 않은 임금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국왕이 인재를 쓰지 못하는 경우가 세 가지 있으니 첫째는 인재를 알아보지 못.. 2025. 7. 30. [조선] 조선시대에서 출세 할수있는 유일한 길 과거 시험 문제 와 9번이나 장원 급제 한 율곡 이이 서울대는 매년 3300명의 학생을 뽑습니다. 반면 조선시대 과거시험은 3년에 한 번 33명을 뽑아 엄청난 공부를 해야만 가능했습니다 정말 어마어마한 경쟁률을 뚫어야 하는데요 그 시절 공무원이 되기가 지금의 사법고시 시험보다도 더 힘들었다니 정말 부자들이 아니고야 생계가 걸려있는 평민이 과거를 통해 출세한다는 건 바늘구멍에 낙타가 통과할 확률인 거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과거를 9번이나 장원급제한 이가 있으니 우리가 모두 아는 율곡 이이입니다. 조선에서 출세하기 위한 과거시험 경쟁률 조선은 태조 2년인 1393년부터 고종 때인 1894년까지 모두 804번의 문과가 치러졌고, 모두 15,137명이 뽑혔습니다.아니, 501년 동안 치뤄진 시험 횟수로 따지면 너무 적은 수이긴 하겠지만 매년 치러지는.. 2025. 7. 29. [조선] 집현전에서 일하려면? 문과 무과 잡과 그리고 집현전을 대표한는 학자들 집현전은 조선시대 학문 연구와 정책 자문을 담당하던 관청으로, 현재의 개념으로 치면 국책 연구기관과 교육기관의 역할을 겸했던 곳입니다. 집현전에서 일하려면 기본적으로 학문적 소양과 뛰어난 능력을 갖춘 인재여야 했습니다. 특히 과거 시험에서 뛰어난 성적으로 급제한 후, 왕의 특별한 부름을 받아야 했습니다. 지금의 공무원이 되기 위한 과정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집현전에서 일하려면 ? 집현전 학자들은 대부분 과거 시험에서 뛰어난 성적으로 급제한 인재들이었으며 특히 문과 급제자 중에서 선발되었고 그중에서도 상위권 성적을 거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집현전에서 요구하는 학문적 수준은 매우 높아 경전과 역사, 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과 이해가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과거시험에 합격했다 해도 .. 2025. 7. 28. [조선] 인재양성소 집현전의 탄생과 관직 그리고 변천사 1기2기3기와 집현전의 마지막 집현전(集賢殿)은 조선 시대에 학문 연구와 정책 자문을 위해 설치되었던 왕실의 연구 기관입니다. 특히 세종 시대에 훈민정음 창제를 비롯한 다양한 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오늘은 집현전의 단계적 발전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집현전의 탄생 및 관직 중국에서 연원한 것으로서 한나라 이래 있어 왔다 우리 나라에도 오래전에 이 제도가 도입되어 이미 삼국시대에 유사한 제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집현전이라는 명칭이 처음 사용된 것은 고려 인종 때이다. 연영전 을 집현전으로 개칭하고 대학사· 학사를 두어 시강 기관( 세자를 모시고 경서와 역사를 강론하며, 나라의 군주로서 갖춰야 할 인격과 교양을 가르치는 임무를 맡은 곳) 으로 삼았지만, 충렬왕 이후 유명무실한 기관이 되었다. 조선시대에 .. 2025. 7. 27. [조선] 세종의 동전화폐 조선통보의 실패원인과 땡전한푼없다 의 유래 조선 정부는 왕조 초기부터 중앙집권적 지배체제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화폐제도를 도입, 실시하고자 하였다. 국폐(國幣)는 조선시대 조정에서 발행 및 공인한 화폐이다. 조선왕조는 건국 초부터 국폐를 발행하였는데 태종 대에는 저화(楮貨)를, 세종 대에는 동전을 발행하여 유통시켰다. 그러나 민간에서는 고려 후기 이래 통용돼 오던 마포(麻布)를 거래 수단으로 활용하였다. 조선의 국폐가 동전으로 전환되는 시기는 1678년(숙종 4) 상평통보(常平通寶)가 발행되면서부터이다. 숙종 대의 중앙 정부는 일본에서 수입한 다량의 구리로 상평통보를 발행하여 전국적으로 유통시켰다. 조선의 처음 동전화폐 조선통보 조선 시대 처음 만든 화폐는 종이돈인 저화입니다. 저화는 1401년(태종 1) 처음 만들어졌으며 재료는 닥나.. 2025. 7. 26. 이전 1 2 3 4 5 6 7 ··· 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