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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조선시대에서 출세 할수있는 유일한 길 과거 시험 문제 와 9번이나 장원 급제 한 율곡 이이

서울대는 매년 3300명의 학생을 뽑습니다. 반면 조선시대 과거시험은 3년에 한 번 33명을 뽑아 엄청난 공부를 해야만 가능했습니다 정말 어마어마한 경쟁률을 뚫어야 하는데요 그 시절 공무원이 되기가 지금의 사법고시 시험보다도 더 힘들었다니 정말 부자들이 아니고야 생계가 걸려있는 평민이 과거를 통해 출세한다는 건 바늘구멍에 낙타가 통과할 확률인 거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과거를 9번이나 장원급제한 이가 있으니 우리가 모두 아는 율곡 이이입니다. 조선에서 출세하기 위한 과거시험 경쟁률 조선은 태조 2년인 1393년부터 고종 때인 1894년까지 모두 804번의 문과가 치러졌고, 모두 15,137명이 뽑혔습니다.아니, 501년 동안 치뤄진 시험 횟수로 따지면 너무 적은 수이긴 하겠지만 매년 치러지는..

카테고리 없음 2025. 7. 29. 16:27
[조선] 집현전에서 일하려면? 문과 무과 잡과 그리고 집현전을 대표한는 학자들

집현전은 조선시대 학문 연구와 정책 자문을 담당하던 관청으로, 현재의 개념으로 치면 국책 연구기관과 교육기관의 역할을 겸했던 곳입니다. 집현전에서 일하려면 기본적으로 학문적 소양과 뛰어난 능력을 갖춘 인재여야 했습니다. 특히 과거 시험에서 뛰어난 성적으로 급제한 후, 왕의 특별한 부름을 받아야 했습니다. 지금의 공무원이 되기 위한 과정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집현전에서 일하려면 ? 집현전 학자들은 대부분 과거 시험에서 뛰어난 성적으로 급제한 인재들이었으며 특히 문과 급제자 중에서 선발되었고 그중에서도 상위권 성적을 거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집현전에서 요구하는 학문적 수준은 매우 높아 경전과 역사, 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과 이해가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과거시험에 합격했다 해도 ..

카테고리 없음 2025. 7. 28. 15:49
[조선] 인재양성소 집현전의 탄생과 관직 그리고 변천사 1기2기3기와 집현전의 마지막

집현전(集賢殿)은 조선 시대에 학문 연구와 정책 자문을 위해 설치되었던 왕실의 연구 기관입니다. 특히 세종 시대에 훈민정음 창제를 비롯한 다양한 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오늘은 집현전의 단계적 발전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집현전의 탄생 및 관직 중국에서 연원한 것으로서 한나라 이래 있어 왔다 우리 나라에도 오래전에 이 제도가 도입되어 이미 삼국시대에 유사한 제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집현전이라는 명칭이 처음 사용된 것은 고려 인종 때이다. 연영전 을 집현전으로 개칭하고 대학사· 학사를 두어 시강 기관( 세자를 모시고 경서와 역사를 강론하며, 나라의 군주로서 갖춰야 할 인격과 교양을 가르치는 임무를 맡은 곳) 으로 삼았지만, 충렬왕 이후 유명무실한 기관이 되었다. 조선시대에 ..

카테고리 없음 2025. 7. 27. 21:49
[조선] 세종의 동전화폐 조선통보의 실패원인과 땡전한푼없다 의 유래

조선 정부는 왕조 초기부터 중앙집권적 지배체제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화폐제도를 도입, 실시하고자 하였다. 국폐(國幣)는 조선시대 조정에서 발행 및 공인한 화폐이다. 조선왕조는 건국 초부터 국폐를 발행하였는데 태종 대에는 저화(楮貨)를, 세종 대에는 동전을 발행하여 유통시켰다. 그러나 민간에서는 고려 후기 이래 통용돼 오던 마포(麻布)를 거래 수단으로 활용하였다. 조선의 국폐가 동전으로 전환되는 시기는 1678년(숙종 4) 상평통보(常平通寶)가 발행되면서부터이다. 숙종 대의 중앙 정부는 일본에서 수입한 다량의 구리로 상평통보를 발행하여 전국적으로 유통시켰다. 조선의 처음 동전화폐 조선통보 조선 시대 처음 만든 화폐는 종이돈인 저화입니다. 저화는 1401년(태종 1) 처음 만들어졌으며 재료는 닥나..

카테고리 없음 2025. 7. 26. 22:10
[조선] 풍기대의 구조와 원리 믿음을 담음 문양들과 풍기대를 만들게된 이유 그것을 관리하던 관상감

세종 시대 풍기대는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측정하기 위해 사용된 도구입니다. 조선시대에는 농업이 중요했기 때문에 날씨, 그중에서도 바람의 관측이 중요했고, 이를 위해 풍기대를 설치하고 그 위에 깃발(풍기)을 달아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측정했습니다. 세종 시대에는 측우기와 함께 풍기대도 사용되어 기상 관측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풍기대의 구조와 원리 풍기대(風旗臺)는 높이 228㎝ 로 바람의 세기와 함께 바람이 부는 방향을 관측하기 위해 깃발(風旗)을 꽂아두었던 받침돌로, 오늘날의 풍향계와 같은 원리이다. 화강암을 정교하게 다듬어 만들었는데, 아래의 받침돌은 네모꼴로 그곳에 모양이 마치 소반(小盤)과 같은 상(床)을 조각하였으며, 그 위로 구름무늬를 도드라지게 새긴 팔각기둥을 세운 모습..

카테고리 없음 2025. 7. 25. 15:58
[조선] 수표의 구조 및 도성민 삶의 중심지였던 수표교 왜 청계천이 아닌 장충단공원으로 옮겨졌는지 알아보자

측우기를 사용해 강우량을 측정하는 방법 외에 하천의 수위 변화를 측정하는 방법도 있다. 비가 오면 하천의 수위가 올라가고, 가물면 하천의 수위가 내려간다는 자연현상에 주목한 방법이다. 1441년(세종 23)에는 측우기의 제작과 함께청계천과에 수표(水標)를 제작하여 설치하였다. 수표의 구조 1441년(세종 23) 지금의 청계천 마전교 서쪽 수중(水中)에 박석(薄石)을 놓고, 그 위를 파고서 받침돌도 개를 설치한 다음 가운데에 사각형의 나무기둥을 세웠다. 그런 후 쇠갈고리로 받침돌을 고정시키고 나무기둥 위에 척(尺), 촌(寸), 푼 [分]의 눈금을 새겨 수표를 설치했다. 그리하여 비가 올 경우 호조의 낭청( 조선시대, 중앙에 두었던 정 3품 당하관부터 종 6품까지 해당하는 관직 )이 수표로 가서 빗물..

카테고리 없음 2025. 7. 24.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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